농업정책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농산물가격 상승을 통해 농업 생산자의 소득을 높여주는 데 있다. 이러한 정책의 주 적용 대상은 농산물이지만 농업생산은 다시 노동, 자본, 토지와 같은 투입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투입 요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농지는 노동이나 자본에 비하면 비농업 부문으로의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농업 부문에 고유하게 사용되는 투입 요소라 이러한 농업정책이 농지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경제 이론적, 정책적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농산물가격을 높이고자 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정부 정책이 실제 생산자보다는 농지를 소유한 지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뿐이라는 비판도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본 절은 농산물 가격정책이 농지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되, 농지의 공급이 시장 상황에 따라 비교적 탄력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1. 농지공급이 탄력적인 경우
흔히들 농지와 같은 토지의 주요 특성으로서 그 공급량이 고정되고, 따라서 공급곡선이 수직선의 형태를 지닌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토지공급이 이렇게 비탄력적이라는 것은 극히 단기적인 현상이다. 농지는 개간이나 간척을 통해 새로이 늘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비농지로 전용되는 속도도 상당하다. 본 서의 제2장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 국토 면적의 23.3%를 차지했던 농지가 2014년에는 16.8%만 차지할 정도로 비농업용으로의 용도변경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보았다. 농지를 비농지로 전용할지의 여부는 물론 전용을 규제하는 정부 정책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토지를 농지로 계속 사용할 때의 수익과 비농업용지로 전용해서 얻는 수익을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크냐에 의해 결정이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농지로부터의 수익이 높고 낮음은 토지가 농업용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아울러 농지는 농업용으로 사용되더라도 용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농산물 생산을 위해 배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밭작물에 비해 쌀의 가격이 높아지면 논 임차료로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기존의 밭을 논으로 전환하여 공급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논 공급량은 논의 가격이라 할 수 있는 논 임차료가 높아지면 증가할 수가 있다.
2. 농지공급이 비탄력적인 경우
통상적으로 가정하는 바와 같이 만약 농지의 공급이 고정되어 있고, 따라서 공급곡선이 수직선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결론적으로 쌀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농지의 공급이 탄력적이고, 따라서 쌀 공급 자체도 탄력적일 때는 쌀과 같은 농산물의 가격지지 정책이 실제로 쌀을 생산하는 생산자에게 잉여로 돌아가는 몫이 크지만, 농지공급 자체가 비탄력적일 경우에는 농산물 가격 지지 정책의 실제 수혜자는 농산물 생산자보다는 농지 소유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농어 생산자가 동시에 농지 소유주이기도 하다면 전체 잉여가 생산자 겸 지주에게로 귀착될 것이다.
농지가격의 결정 요인
농지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생산요소일 뿐 아니라 농가에는 가장 중요한 자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지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지의 가격은 물론 토지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얼마나 더 큰가에 달려 있고, 토지 수요는 토지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토지 가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엄청나게 서로 다르고 농지가격도 지역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토지가격이 이렇게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고전적 이론이 두 가지의 차액지대론이다. 토지를 임대할 때 주고받는 지대는 토지의 수익을 반영하고, 지대의 높고 낮음이 지가의 높고 낮음과 연결되므로 차액지대론은 결국 지가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된다.
대표적인 고전학파 경제학자 리카르도는 토지의 가치 차이는 토지 비옥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상대적으로 비옥한 토지는 그렇지 못한 토지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따라서 토지의 생산성 차이에 따른 생산물의 가치 차이가 바로 토지의 지대, 나아가 지가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본다. 이는 위에서 제시한, 농지의 수요는 파생수요이고, 농지의 한계생산성이 높을수록 수요자는 높은 농지가격을 지불하고자 한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또 다른 차액지대론은 튀네가 제안한 것으로서, 토지의 가치 차이는 비옥도가 아니라 위치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활동은 특정 중심지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경제행위자들은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경제활동을 위한 수송비나 교통비 부담이 커지는데, 중심지의 관청이나 법원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변호사들처럼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유난히 비용 부담이 큰 업종이 보다 중심지 가까이 위치하고, 그보다 적은 횟수로 생산물을 한꺼번에 많이 중심지 시장으로 수송하면 되는 공장 등은 멀리 떨어져 위치하는 등의 선택을 한다. 중심지로의 접근성이 중요한 업종일수록 높은 임대료를 낼 의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토지 임대료나 가격은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낮아지게 된다.
두 가지 차액지대론은 거의 200년 전에 개발되었지만 토지가격 차이를 설명하는 유효한 이론들이다. 일반적으로 리카르도의 차액지대론은 농지의 가격 차이를, 튀넨의 차액지대론은 도시 토지의 가격 차이를 잘 설명한다고 이해되고 있으나, 최근에는 농지의 경우에도 이 두 이론이 모두 작용하고 있음이 이론적,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농지는 농지로 이용될 때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수익에 비농지로 전용이 된 후 도시용으로 사용됨으로써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을 더하고, 여기에 비농지로 전용하는 데 비용이 든다면 이를 빼준 것이라야 한다. 아울러 농지의 전용은 비가역적인 행위로서, 일단 비농지로 전용되면 농지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기 때문에 농지로 재 전용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 농지로 이용되고 있는 토지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을 살펴보자. 1. 농지로서의 농업수익, 2. 비농지로 전용된 후 얻는 수익과 전용 비용, 3. 전용 시점이다.
느낀점
농업정책이 결국 농산물 생산자보다 농지 소유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씁쓸했다. 정책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생산자 보호’인데, 실제로 이득을 챙기는 건 땅을 가진 사람이라니,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결국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농지공급의 탄력성과 비탄력성을 구분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땅은 쉽게 옮길 수 없는, 말 그대로 '고정된' 것 같지만, 전용을 통해 그 용도가 바뀌고, 결국 가격도 변화한다는 점에서 땅도 ‘움직인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였다.
특히 튀넨의 차액지대론에서 ‘위치’가 토지가격을 좌우한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사람들도 결국 위치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중심지 가까이 있을수록 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땅처럼, 사회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인정받는 구조 같달까. 나처럼 항상 바깥에서 맴도는 사람은, 그저 멀리 떨어진 값싼 땅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농지를 비농지로 전용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어떤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말. 그게 꼭 토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 같았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다른 걸 택하는 순간, 그 선택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망설이게 된다.
결국 이 글은 농지의 가격과 수요공급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이지만, 내게는 그 안에 묘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의 구조, 그리고 내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농업정책이라는 주제인데도, 이상하게 인간적인 감정이 많이 남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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