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통 경로
농산물이 산지에서 소비지로 유통되어 가는 길인 유통경로는 농산물이 매매되는 과정에 관계하는 유통기구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시스템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지에서 농가가 생산한 쌀은 도매상인과 소매상인 등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들이 바로 유통경로이다. 유통경로는 각각의 유통단계를 가진다. 여기서 유통단계는 상품의 거래에 관여하는 중간 유통업자의 각 단계를 의미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매 단계, 소매 단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농식품의 유통단계가 많을수록 유통경로의 길이는 길어지는데, 유통경로의 길이는 거래되는 상품 자체의 특성과 상품의 수요 및 공급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먼저 상품 특성의 경우 거래 상품이 동질적일수록, 크기 혹은 무게가 작을수록, 부패 가능성이 작을수록, 기술이 단순할수록 유통경로가 길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만큼 중간단계에서 유통인들의 손을 거치기 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수요측면에서는 한 번에 구매하는 양이 작을수록, 구매 빈도가 높고 규칙적일수록, 구매자가 많을수록, 구매자가 많은 지역에 흩어져 있을수록 여러 단계의 유통인들 역할이 필요해지므로 유통 경로가 길어지게 된다. 공급 측면에서는 상품의 생산자가 많을수록, 생산자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을수록 상품 수집의 필요성이 많아지므로 유통경로가 길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유통경로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유통단계는 중간 유통단계가 하나도 없는 0단계로 직거래가 해당한다. 0단계는 가장 짧은 유통경로로 과거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농산물을 매매하였던 시기의 유통경로나, 최근에 다시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1단계 유통경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소매상이 끼어드는 유통경로로 하나의 유통단계가 발생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시장이 형성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이후 상인들이 보다 전문화되면서 세분된 역할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지게 된다. 즉 기존 중간상인이 생산자가 생산한 상품에 대한 수집을 전담하는 도매상과 소비자에게 상품을 분산시키는 소매상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도매상과 소매상이 활동하는 2단계 유통경로가 생겨나는 것이다. 나아가 필요에 의해 추가적인 중간상인이 개입하게 될 경우 도매상, 중매상, 소매상이 각각의 유통 역할을 하게 되는 3단계 경로가 생겨난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유통경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산지 수집, 도매, 소매 단계에서의 유통 주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청과물 유통경로를 살펴보자면, 산지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을 농협이나 수집상을 통해 수집한 다음 도매시장을 거쳐서 다양한 소매업체나 외식업체에 유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도매시장 상인이 직접 산지 농가에서 농산물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고, 대형 할인점이나 외식업체가 산지 농가와 직거래를 하는 등 다양한 유통경로가 생겨나서 상호 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도매시장을 통하지 않고 소매업체나 외식업체가 산지에서 농산물을 직접 거래하는 분산 유통 체계가 확대되고 있어 도매시장의 거래 물량이 줄어드는 얇은 시장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비자들이 산지 농가와 직거래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 발달의 혜택을 입고 있는 결과이다.
2. 유통비용
농산물이 각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유통비용은 농산물의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 및 이윤, 다시 말해서 최종소비자가 지불한 금액에서 생산자 수취가격을 뺀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유통비용은 유통업자가 수행한 기능 및 효용 증대에 대한 보상이고,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물류비용, 점포 임대료, 감모 등의 유통비용과 유통업자의 이윤 합이다.
일반적인 유통비용을 보다 세분화하여 유통 단계별 유통비용을 계산하기도 한다. 즉 유통 단계별 유통비용은 그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판매할 때의 가격에서 이전 단계에서 구매해 올 때의 가격을 뺀 가격인데, 예를 들어 도매 단계 유통비용은 소매 단계에서 판매할 때의 가격에 산 지에서 가져올 때의 구매 가격을 뺀 값이다.
한편, 유통비용은 유통비용을 소비자 지급 가격으로 나눈 것으로, 유통비용과 달리 비율로 값이 도출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상품 간의 유통비용 비교가 용이하다. 유통마진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농식품의 가공 정도 및 저장 여부, 상품의 부패성 정도, 계절적 요인, 수송비용, 상품 가치 대비 부피 등이 있다. 즉 가공의 정도가 높거나 저장을 오래 하는 품목은 그렇지 않은 품목에 비해 유통마진율이 높고, 수송 거리가 멀거나 상품가지 대비 부피가 큰 상품도 유통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물론 중간상인들의 이윤이 과다한 경우도 유통마진율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유통비용은 유통과정 중에 발생한 모든 비용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인들의 이윤만이 유통비용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3. 유통 단계별 기관과 기능
3.1 산지
농산물 산지에 있는 유통기관은 산지 유통인과 농업협동조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수집이라는 공통된 유통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각자의 특성을 살려서 상호 경쟁한다.
산지 유통인은 생산 지역을 다니면서 농가 단위의 농산물을 수집하여 다음 단계의 유통조직에 출하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상인들로, 농가와 포전매매 혹은 정전 매매 등을 통해 산지 거래를 한다. 밭떼기로도 불리는 포전매매는 농산물을 수확하기 전에 해당 밭을 단위로 사전 계약을 하고 선도금 등을 지불하는 거래 방식으로 선도거래의 하나이다. 포전매매는 농가에 사전에 필요한 자금 일부를 지급하는 농업 금융의 기능과 수확 후 시장 가격 변화와 관계없이 계약된 가격으로 농산물을 구입하여 시장 위험을 대신하여 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일부 산지 유통인들의 계약 파기 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한다. 반면, 정전 매매는 농가가 수확하여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농가 집에서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현물거래에 해당한다.
3.2 도매
도매기관들은 중계 및 일부 분산 기능을 담당하는데, 크게 도매시장에서 유통 기능을 하는 도매시장 법인, 중도매인, 매매참가인, 시장도매인과 도매시장 밖에서 별도의 유통 기능을 담당하는 농산물 종합유통센터로 구분될 수 있다.
도매시장 법인을 살펴보자면, 경매를 통한 농산물 중계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산지 출하자들이 보낸 농산물을 위탁받아서 중도매인 또는 매매참가인을 대상으로 경매를 진행하고 낙찰받은 농산물의 대금을 산지 출하자 대신 받아서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출하자에게 정산하는 기능을 한다.
4. 느낀점
이 글을 읽으며 느낀 점은, 우리가 슈퍼에서 쉽게 접하는 농산물 하나하나가 결코 단순한 과정을 거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지에서 시작해 소비자의 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통 단계와 기관이 개입하며, 그 안에는 복잡한 시스템과 관계,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손길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특히 유통경로의 길이가 상품의 특성과 수요·공급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유통의 ‘길이’가 이처럼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통이 단순히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전략적인 사고와 체계적인 설계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걸 느꼈다.
유통비용에 관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단순히 ‘비싸졌다’고만 생각했던 소비자 가격이 사실은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비용과 이윤의 합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고, 그 속에는 수송비, 감모, 임대료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또한 유통마진율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이윤의 척도가 아니라 상품의 특성이나 유통 환경 전반을 반영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유통기관별 기능을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각 단계의 유통 주체들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이 아니라 나름의 책임과 역할을 지닌 존재들이며, 그들이 유통망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포전매매와 정전매매의 차이는 농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주었고, 단지 농산물의 흐름을 넘어 농가의 생계와도 밀접히 연결된 제도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농산물 유통은 단순한 물류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관리해야 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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